광고

허수경 시인의 '봄날은 간다'

이화영 시인 | 입력 : 2021/02/15 [10:29] | 조회수 : 159

 

지난 2020년은 문학인의 부음을 많이 받았다. 봄날은 오는데 그녀는 갔다. 서럽고 아프고 부럽다. 오래전에 허수경 시인의 시를 리뷰한 기억이 있어 덧붙인다. 나는 왜 그때 봄날은 간다를 선했을까. 그녀는 정말 이제 시시껄렁으로 살아가려고 작정하였나보다.

 

시시껄렁이 나를 먹여살리는그곳은 桃花피고 새 울겠다. 도화아래 앉아 먼저 간 시인들을 만나면 영랑 선생은 모란으로 미당 선생은 화사로 환대하시겠다.

이제 아픔 없는 그곳에서 영면하시길.

 

 

봄날은 간다

 

허수경

 

 

사카린 같이 스며들던 상처야

薄粉의 햇살아

연분홍 졸음 같은 낮술 마음 졸이던 소풍아

안타까움보다 더 광폭한 세월아

순교의 순정아

나 이제 시시껄렁으로 살아가려하네

시시껄렁이 나를 먹여 살릴 때까지

 

 

 

*시인 허수경

 

 1964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 경상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1987[실천문학복간호에 시가 실리면서 등단. 시집으로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와 수필집 [길 모퉁이의 중국식당] 그리고 번역서 [끝없는 이야기] 가 있음. 2001년 제 14회 동서문학상을 수상. 현재 독일에서 거주하며 뮌스터 대학에서 고대동방고고학 공부했다. 20183일 암투병 중 별세.

 

 

 

 

유목의 봄날 

 

이화영

 

 

 

 지독히 아름다운 것은 고통스러운 법이다.

 오월 때늦게 몰고 온 비바람에 꽃보라처럼 휘날리는 벗꽃을 본 적이 있다. 십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까닭은 애잔한 아름다움이 남긴 치명적인 후유증 탓이리라.

 

 허수경 시인의 [봄날은 간다] 가 주는 메타포는 상처를 녹여온 현재의 순함이다. 사카린처럼 스며든 옹이진 상처에  박분의 햇살이 녹아들어 순함의 절정에 오기까지, 시인이 걸어 온 薄氷의 세월을 버티게 해준 힘. 그것은 '연분홍 졸음 같은 낮술 마음 졸이던 소풍' -같은 시인의 내면에 품고 있는 환한 봄날이었을 것이다. 그 봄날이 시대와 배경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가고 온다.

 

 시인이 언술한 '순교한 순정' 이나 '시시껄렁'을 언어의 장식적 기능으로 돌려버리기에는 동시대를 건너 온 내게 있어 시인의 목소리가 주는 울림이 제법 크게 다가온다. 시인의 '순교한 순정''시시껄렁' 에게 먹히지 않을 것임은 시인의 성정을 볼 때 누구나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80년대 혼란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시인은, 지우고 싶은 기억을 '시시껄렁' 에게 던져보고 싶지만 몸에 배지 않은 '시시껄렁' 은 시인을 쉬이 포옹하지 못한다. 시인이 살아온 內傷의 세월 속에 배어있는 '순교의 순정'이 빈 틈 없이 시인의 가슴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흐의 '꽃 핀 복숭아나무' 작품을 보면서 시인의 봄날을 떠올린다. 소중한 것들은 떠난 뒤에 다가 오는 것인가. 고흐의 그림 중에 가장 훌륭한 풍경화로 손꼽히는 '꽃 핀 복숭아나무' 는 스승 '모베' 死後 그에게 헌정된다.

 

 세월이 흘러 허수경 시인의 나이 耳順쯤에 이르면 '시시껄렁' 이 시인의 심중에 '꽃 핀 복숭아나무' 한 그루로 눈부시게 피어있을까? 눙치는 넉살까지 담은 활짝 핀 한 그루 '시시껄렁' 을 기대해본다.

 

 시인은 지금 독일에 거주한다. 고향 진주를 떠나 고고학자로서 자신의 문학적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노마드nomad 적인 삶에, 수묵화의 농담으로 천착한 시어들이 상처의 치유란 미학의 결실을 거두었다. 생것 같은 타지에서 시인은 흔적 없이 떠나가고 있는 봄날의 것들을 모국어로 시를 노래하고 있다. 이쯤 되면 시인의 문화적 유배는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웹진 [시인광장] 2010. 10월호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홍수연
김평엽
이화영
전형철
서대선
이서빈
심우기
허갑순
허갑순
마경덕
이영춘
백현국
이충재
권영옥
박일만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 집필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